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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프로듀스101' 비평 (연세 108호)
    Essay/Column 2019. 7. 7. 01:00

     

     

     

     

     

      특기는 도깨비 성대모사, 취미는 분리수거. 실력을 어필해야 할 개인 소개 영상에서 거대한 상어 인형을 뒤집어쓰고 나와 꿈틀거리는 김소혜는 이상하다. 계속되는 지적에도 씩씩하게 대답하며 밤새 연습하고, 그런데도 가사를 완전히 틀려버리고, 이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서 틀린 가사를 유행어로 만들기까지 한다. 이런 ‘이상한’ 김소혜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결과적으로 101명의 연습생을 통틀어 가장 낮은 실력을 갖추고도 5위에까지 올랐고, 안정적으로 최종 결성팀 IOI에 합류했다.

     

      최유정은 김소혜에 비해 완성된 ‘성장형’ 캐릭터이다. 첫 번째 평가에서 거의 최하위 성적인 D를 받은 그는 작은 키에 눈에 띄지 않는 외모, 결정적으로 경쟁과는 맞지 않아 보이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평상시의 최유정을 ‘쭈글쭈글하다’고까지 묘사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테마송인 'Pick Me'을 연습할 때 완벽한 안무와 곡 숙지를 보여 이 곡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첫 무대에서 센터를 맡으며 순식간에 주목을 받는다. 이후 공연에서도 독보적인 표정 연기로 화제가 되었고, 실력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센터 욕심을 내지 않는 등 시청자들에게 호감형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인기 순위 3등으로 IOI에 합류한 최유정은 최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프로듀스 101이 밀고 있는 캐치프레이즈이다. 매주 한 명의 연습생을 뽑을 수 있는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선택을 정당화한다. 김소혜는 인기에 비해 실력이 모자란다며 한 명이 불평하면, 다른 누군가가 튀어나와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애초에 배우 연습생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반박한다. 반면 실력과 ‘인성’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는 최유정은 언제나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간혹 가다 누군가가 그의 귀염성 있지만 평범한 얼굴을 지적하면 그 사람은 진정한 매력을 보지 못하는, 생각 얕은 외모지상주의자로 비난받는다. 기획부터 도덕과는 거리가 먼 경쟁 프로그램에서 어느새 모두가 정의를 찾고 있다.

     

      프로듀스 101이 처음 예고되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 냉소에 가까웠다. 갈 데 까지 갔구나. 101명의, 저마다의 절박한 사연이 있는 연습생들을 모아 놓고 등급을 매겨 평가하는 프로그램의 방식은 누가 봐도 잔인하다. 1등부터 101명까지 순위대로 쌓여있는 피라미드를 보면 기괴하다는 (다른 말로 ‘크리피’ 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프로그램 방영 전부터 방송의 윤리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이는 많은 시청자가 동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청률은 계속해서 올랐고, 여당의 총선 로고송으로 선택될 만큼 화제가 되었다. 프로듀스 101의 애청자들은 기획은 마음에 안 들지만,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단순히 외모가 뛰어난 게 아니라 데뷔할 ‘자격’이 있는, 다시 말해 실력과 ‘인성’을 갖춘 연습생한테 기회를 준 것이라며 뿌듯해한다.

      프로그램이 이만큼 인기를 끈 데에는 강력한 볼거리와 101명의 시너지가 만들어내는 ‘이 중의 한 명 정도는 네 취향이겠지.’ 전략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제적으로 주어진 서사와 이와 함께 탄생한 캐릭터의 힘이 크다. 프로듀스 101은 모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그렇듯 뚜렷한 성장 스토리의 프레임을 따른다. 첫 화부터 기획사의 영향력에 따라, 그리고 평가 때 주어진 등급에 따라 연습생들 간 뚜렷한 급이 나뉜다. 이 중 몇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 적이 있고, 몇은 데뷔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작부터 불공평한 게임이다. 많은 연습생은 첫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1차 경연의 ‘다시 만난 세계’ 2조는 전소미로 대표되는, 대형기획사 출신에 이미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연습생들로 구성되어 있어 ‘어벤저스 조’로 불린다. 연습하기도 전에 기가 죽은 1조는 밤을 새워서 연습하지만, 막상 중간 평가 때 상대 팀이 생각보다 막강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희망을 품는다. 전형적인 강자 vs 약자의 서사이다. 그리고 이런 대치에서 관객의 마음이 향하는 쪽은 전통적으로 후자였다. 1조의 유연정은 무대에서 폭발적인 고음을 보여 중하위권 등수에서 상위권으로 단숨에 발돋움하고, 최종적으로 11명 안에 들어 IOI에 발탁된다.

      약자의 고난-노력-자기완성은 가장 고전적인 서사이며, 시청자의 몰입과 공감을 즉각적으로 일으킨다는 점에서 강력할 수밖에 없다. 개별평가에서 D를 받고 기가 죽어있던 참가자가 완벽한 안무와 노래를 선보여 센터에 서자 대중은 순식간에 그를 스타로 만든다. 첫 무대 때 형편없는 실력을 보인다 해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연습생의 약진은 대중을 흐뭇하게 하며, 다른 연습생들이 유독 실력이 떨어지는 한 명을 챙기는 모습 또한 제법 훈훈하다. 최유정과 김소혜는 엠넷이 추구하는 서사에 가장 들어맞았기에 높은 분량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서사의 힘은 단순히 프로그램에 몰입을 높이고 재미를 부여하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잘 짜인 스토리는 대중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는 연습생들 개개인에게 맥락을 부여하며, 각각의 캐릭터를 형성하여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데에 공헌한다. 실수 없이 완벽한 무대는 감탄을 사지만, 정말 정이 가는 쪽은 비를 맞고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힘겹게 무대를 마무리 짓는 소녀들의 ‘고난’이다1. 10대 중후반의 어린 소녀일수록 대중의 안타까움, 또는 응원과 공감이 힘을 발한다. 고된 훈련과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돌과 연습생들은 기본적으로 지켜줘야 할 것 같은 가는 체격의 여자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녀들이 눈물을 터뜨릴 정도로 고생하고, 승패가 뻔히 보이는 결과에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연습하며, 혹평만 일삼던 트레이너의 인정을 처음으로 얻어내는 모습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

     

      바로 그렇기에 소위 말하는 ‘대중성’이라는 것은 외모와 실력에 따라 절대적인 등수를 매기는 기획사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연습생들을 보면 실력이 조금 떨어지거나 외모가 출중하지 않아도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개개인의 개성과 맥락이다. 평상시엔 그저 귀엽기만 해도 무대 위만 올라가면 표정이 변하는 최유정은 분명 매력이 있으나, 뛰어난 외모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제나 부스스한 모습의 김소혜 또한 화제가 될만한 ‘이상한’ 매력이 있긴 하나, 외모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이 둘을 응원하는 일은 단순히 외모만을 보지 않는다는, 다소 입체적인 평가를 한다는 환상을 준다. 여기에 ‘인성’이라는 요소까지 들어가며 본디 101명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에 지나지 않던 프로그램에 얼토당토않은 ‘정의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대중의 동정 또는 흐뭇함을 가장 자극하는 연습생을 뽑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간과하는, 또는 간과한 체하는 것은 그들이 잡아낸 개개인의 ‘캐릭터’ 또한 모두 방송의 통제 속에 있다는 것이다. 2화에서 D에서 A라는 극적인 도약을 보인 최유정은 첫 평가가 의아해질 정도로 프로그램 내내 기복 없는 실력을 보인다. 그는 애초에 ‘성장’ 또는 ‘극복’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잘하는 연습생으로, 타 소속사와도 곧잘 어울릴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지만 제작진은 계속해서 그의 조그만 체격과 지켜주고 싶은 ‘쭈글미’를 부각한다. 김소혜 또한 부족한 실력을 변명하듯 소속사에 속아 출현했다는 설정이 억지스럽고, 프로그램에 ‘내 딸 김소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분량이 편파적이다. 높은 인기가 온전히 그의 매력 덕분이라 하기에는 연출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이와 비슷한 서사를 연출할 수도 있었을 80명 남짓한 연습생은 대다수가 시청자의 기억에 남을 분량도 확보하지 못한 채 ‘방출’되었다.

     

      이러한 연출의 힘은 외모와 실력을 모두 확보한, 부족한 점 없어 보이는 상위권 연습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소속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적이 있어 이미 두터운 팬덤을 확보한 JYP 전소미와 인기 1, 2위를 다투는 김세정은 외모, 실력, 인성이 모두 갖춰진 종합선물세트 같은 연습생이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출연자 내에서도 비주얼 멤버로 손꼽혔던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두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모두가 긴장해있던 1차 평가 때 유일하게 방청객같이 능숙한 리액션을 보여 준 연습생이기도 하다. 무대마다 독보적인 음색으로 보컬 트레이너의 감탄을 사며, 조금 부족해 보였던 춤도 노력으로 보강해 안정적으로 A등급을 유지한다. 그러나 김세정이 많은 분량을 확보하며 ‘대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팀원 중 가장 뒤처지던 김소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이 방송 내에서 ‘케미’로 포장되면서부터다. 이후 김세정의 지지자들은 열정적으로 그의 ‘인성’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팀원을 챙기는 모습은 ‘인성’보다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이나 프로 의식 쪽에 가깝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연예인의 성격을 무슨 수로 짐작한다고 하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카메라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매주 한 시간 분량으로 편집된 그의 모습이 인성까지 알려줄 수 있을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김세정이 카메라 앞에서 노련하게 자신을 관리할 줄 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실제 촬영 분량의 5%도 담아내지 못하도록 편집된 영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제작진이 의도한 것들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는 Mnet이 편집한 캐릭터를 실제 개개인의 성격이라 착각하고, 프로그램의 규정을 내면화하여 각 출연자를 평가한다.

     

    그래프   _ ‘1 차 방출 ’   당시 연습생 순위와 노출 시간 비교   ( 출처 : ( 사 )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

     

     

      실력에 따른 서바이벌이 아니기에 프로그램의 기본 틀인 경연도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빼면 사실상 불필요하다. 각 파트를 작곡가도, 프로듀서도 아닌 연습생들끼리 나누게 하는 방식도 생각해 보면 비효율적이다. (8화에서 팀마다 지정된 작곡가가 몇 분 만에 파트를 나눠주는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몰래카메라를 통해 출연자의 ‘인성’을 평가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4화는 그 속내가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시청자의 빈축을 샀다. 이 모두는 프로그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공정해 보이도록 노력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인기투표에 지나지 않는 프로그램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상품화이되, 과거보다 교묘해진 상품화이다. 비주얼 제1, 2위로 평가받는 주결경과 정채연은 이렇다 할 에피소드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음에도 항상 높은 순위권을 유지한다. 전소연은 압도적인 무대 존재감과 랩 실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부족한 외모가 부각되었고, 이는 제작진의 의도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쉽게 최종 팀에서 탈락한다.

       

      전소연을 향한 외모 관련   악성 댓글 .   한글 문서에 그대로 타이핑하여 빨간 줄이 보이는 등 지나치게 조작 티가   난다 . ( 출처 :   프로듀스   101)

     

     

      사실상 프로듀스 101은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기투표다. 일본에서는 정당 총선보다 인기라는 AKB48의 총선거와 다를 바 없다. 거기에 굳이 팀별 경연, 개인 경연을 넣어 ‘실력’을 강조하고, 전문가가 배분하면 간단할 메인 보컬 및 센터 등의 포지션을 팀 내부에서 알아서 정하도록 하는 것은 모두 이 인기투표를 미화하려는 시도이다. 단순히 얼굴이 예쁜 연습생이 아니라 실력과 개념까지 겸비한 연습생에게 표를 준다는 환상 말이다.

      예로부터 젊고 예쁜 여자에 대해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전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였다. 미스코리아를 비롯한 각종 미인 경연대회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존재한다.2 젊은 여성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어 평가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그것이 사회에서 크고 작게 반복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익숙한 품평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각 인물에게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그 평가를 정당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된 상품화는 최근 들어 훨씬 더 정교해졌다. 우리는 거기에 어떤 도덕적인 가치마저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큰 문제는 그러한 정당화가 젊은 여자연예인만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남성연예인은 ‘군대’라는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상대적으로 사회적, 도덕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 가수 이수는 과거의 미성년자 성매매(문제의 미성년자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강간이었다)에도 불구하고 이후 7집 앨범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여는 등 문제없이 음반 활동을 하고 있다. 개그맨 장동민은 성 경험 있는 여성을 팟캐스트에서 ‘개보년’이라 욕한 ‘옹달샘 사건’ 외에도 사고 생존자, 한 부모 가정 아이, 치매 노인 등 약자를 집중적으로 조롱했지만, 각종 예능에 섭외되며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윤리의식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도리어 예민한 사람으로 비난받는다. 옹달샘 사건에서 대중의 몰매를 맞은 쪽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창녀에 비유한 장동민이 아니라, 장동민의 발언에 ‘유난스럽게’ 들고 일어나 국민 예능 무한도전에서의 하차를 이끌어낸 여성시대 회원들이었다. 성별에 따라 모든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젊은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다.

     

     

    ‘개념녀’라는 환상

       

     

      누구나 학내 단과대, 또는 동아리를 비롯한 각종 공동체 생활에서 장기자랑을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무대 앞으로 나와야 할 때도 있지만, 주로 그 장기자랑이 초점을 맞추는 쪽은 여자 신입생이다. 평범한 술자리에서도 어린 여자가 벌칙으로 귀여운 척을 하거나 섹시 댄스를 추는 경우는 흔하다. 이뿐만 아니라 남자끼리만 있는 자리에서는 여자 동기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평가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이렇듯 여자는 언제나 평가의 대상이었고, 거기에 인성이라는 요소가 들어가면서 그 기준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세분화되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개념녀’라는 말은 여성에게 부여되는 여러 자격요건을 응집한 용어라 할 수 있다. ‘개념이 있는 여자’를 줄인 이 말은 시작부터 남성을 평가하는 자, 여성을 평가받는 자로 위계질서를 만들어 낸다. ‘개념남’이라는 단어는 상대적으로 생소하며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대상, ‘김치녀’와 ‘된장녀’는 익숙하지만 ‘김치남’, ‘된장남’은 이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실적으로 그 사람과 오랜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인성을 알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인성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항목, 즉 ‘검소함’이 되었다. 이 검소함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나 취향, 벌이의 정도와 생활반경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점이다. 레드카펫 위를 걷는 연예인이든, 평범한 대학생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명품을 이용하면 된장녀이고 값싼 보세 옷을 입으면 개념녀란 식이다. 배우 강소라는 2014년 MAMA 시상식에서 3만 원짜리 SPA 브랜드 원피스를 입어 몸매만큼 인성도 완벽한 개념녀로 칭송받았다. 간단한 디자인에도 강소라의 차림이 맵시 있었던 건 전문적인 관리의 힘이고, 일반인이 그 정도로 몸매를 가꾸려면 웬만한 명품을 능가할 돈이 필요하지만 이는 간단히 무시 받는다. 명품의 대표 격으로 대우받는 샤넬 립스틱을 쓰면 속물이라 비난받지만 문제의 립스틱은 3만 원 정도이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립스틱인 크리스찬 루부탱(11만원)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사용 시 화장품에 대해 잘 모르는 남성들에게 “검소하다”는 말까지 듣게 된다. 여성을 향한 도덕적 비난들의 근거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개념녀 담론은 많은 남성, 심지어는 상당수의 여성에게도 지지받는다. 지금까지 여성을 향한 평가가 주로 외모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면, 여기에 인성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며 평가 자체에 도덕적 정당성이 주어진 셈이다. 이것은 차라리 ‘난 못생긴 여자는 여자로 안 쳐’라며 대놓고 여자를 성적 대상화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질이 안 좋다. 기존 담론들에선 원시적인 섹슈얼리티와 물질 만능 주의가 대놓고 활개를 쳤을 뿐, 그 사이 도덕이 낄 틈이 없었다. 지금의 '인성'론은 기존의 성적 대상화는 그대로 긍정한 채 그 위로 점잖은 가면을 쓴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자, 특히 대중에게 평가받는 것이 직업인 연예인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은 지나치게 좁아졌다. 프로그램 종영 후, 김세정의 ‘인성’에 감탄한 남자 팬들은 ‘개념녀 세정이’를 위해 손글씨 편지가 주를 이루는, 좋게 말해 수수하고 실상은 누가 봐도 조잡해 보이는 선물을 준비한다. 데뷔 전부터 너무 비싼 선물을 주면 착한 애를 망친다는 것이다. 팬들의 선물을 받게 된 김세정이 이후 사복을 입거나 잡다한 액세서리를 고를 때 ‘너무 비싼’ 가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치’와 ‘검소’를 구분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며, 언제나 절대적인 가격을 따르지도 않기 때문에 사실상 끝이 없는 싸움이다.

     

    김세정 갤러리의 조공   ( 출처 :   디씨인사이드 김세정 갤러리 )

     

     

     

     

    Bad Girl Good Girl, 여성 연예인의 덫

       

     

      이후 대중은 연예인,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 연예인이 대상이 되는 모든 일에 도덕을 논하기 시작했다. 설리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 때문에 ‘도덕적으로 타락한’ 연예인의 대표 격쯤으로 치부 받는다. 그녀가 올린 사진들에는 공개연애 중인 남자친구와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 휘핑크림을 입에 짜 넣으며 눈을 마주치는 동영상, 젖꼭지 자국이 살짝 눈에 띄는 골지 티 차림의 셀카 등이 있다. 성 정서가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눈에 띌 수 있지만, 이것을 보고 촬영자의 도덕을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교제 중인 성인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며, 휘핑크림을 짜 넣는 일 또한 마약 복용까지 의심하는 몇몇 극단적인 반응3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귀여운 정도의 섹스어필이다. 미디어는 이에 더해 말도 안 되는 제목을 붙여가며 대중의 분노를 자극한다. 설리가 보고 만족한 최자의 ‘물건’은 그의 핸드폰이며, ‘밤에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의 직업이기도 한 랩이다. 대중의 인식에 앞서 미디어의 악의적인 편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여성은 성(性) 역할에 있어 적극적이어선 안 된다는 사회적인 통념이 있다. 남성 연예인은 미성년자가 주 고객층인 음악방송에서 69등 노골적인 성적 문구가 써진 배지를 하고 나와도, 업소에 간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리에 관한 기사 제목 (출처: 조선일보)

     

     

      아이유는 시작부터 롤리타 컨셉을 밀고 나갔다. 양 갈래 머리와 애매한 표정을 한 채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하고 천진난만하게 노래 부르던 모습은 노골적으로 그 이미지를 선전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극성맞은 삼촌 팬들로 유명했고, 그의 앳된 얼굴에 33 사이즈의 가느다란 몸, 맑은 목소리 등은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정작 롤리타 마케팅은 성인이 된 아이유가 이 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면서부터 문제로 떠올랐다. 예전에는 불편함 없이 즐겼던 과거 뮤직비디오와 앨범커버가 새롭게 조명되었고, 다양한 해석의 목소리들은 미디어의 천편일률적인 보도 아래 빛을 잃었다. 아이유 본인이 작사했던 이번 앨범의 다양한 곡들과 그와 함께 정의한 자신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다. “자아가 있는 아이돌”, 4즉 자율적으로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 아이돌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방송에서 비춰지는 연예인의 모든 모습이 일차적으로 미디어의 가공을 거친 것이라는 말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매년 있었고, ‘악마의 편집’이란 말이 유행할 만큼 방송사의 연출은 매회 비난받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방송은 우리가 연예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모든 판단과 취향은 방송을 근거로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가 알면서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로듀스 101이 종영하자마자 선발된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24시간 밀착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숙소에까지 포진된 CCTV들은 멤버들의 매 순간순간을 녹화하고 대중 앞에 선보일 것을 예고한다. 대중은 각 멤버를 실제로 알고 있는 것 마냥 그들의 성격을 논하고, 내면을 평가한다. 방송의 절묘한 편집과 자막의 힘으로 우리가 도덕적으로 단죄할 수도, 갸륵히 여길 수도 있을 하나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이 ‘캐릭터’라는 상품으로 포장되어 팔리고 평가받는, 바야흐로 캐릭터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1. 더보기
      걸그룹 여자친구는 [박영진, 박지선의 명랑특급] 공개방송에서 비를 맞으며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다가 여덟 번이나 넘어졌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들의 ‘직캠’은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음원차트 20위권 바깥에 머물러 있던 당시 활동곡 ‘오늘부터 우리는’은 차트 상위권으로 빠른 역주행을 보였다. 중사위권에 머물러 있던 여자친구가 뜰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2. 더보기
      “[프로듀스 101] ① 나의 소녀를 구해줘”, ize, 2016년 2월 23일
    3. 더보기
      사진 속 설리의 동공이 유난히 크다며, 저런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이유는 마약 복용 때문이라는 인스타그램 댓글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현대 사회에는 렌즈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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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유, 설리, 엠버, 그리고 자아를 갖는 아이돌”, idology, 2016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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